『영혼의 성』에 나타난 아빌라의 데레사의 가르침:

“기도 가운데 생기는 분심, 축복인가 저주인가?

 

기도 중 분심은 하나님의 피조물이자 우리가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것!

분심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 “분심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창조물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므로 분심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분심은 인간 됨 속에 내재되어 있다. 그것들은 사람들의 삶 속 어디에서든지 현존한다. 분심들은 인간 실재의 일부분인 의식의 흐름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청하며, 그것들은 우리가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특징으로서 분심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모든 피조물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듯이, 하나님은 분심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분심들은 더 큰 자기 지식과 하나님께 더 깊은 마음과 정신을 내어드리도록 우리를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봉사할 수 있다."

 

각 궁방의 특징적인 분심을 암시하거나 지시하는 것들이 데레사의 글 안에 들어 있다. 데레사는 그것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충고해 준다.

 

하나님과의 연합을 향한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열망이 점점 실현되어감에 따라 그녀는 우리의 영적성장을 위하여 분심들의 의미를 해석해 준다. 그러므로 분심들은 우리를 더 큰 자기-인식 및 하나님을 향한 정신과 마음의 보다 깊은 차원의 순종으로 초대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책은 아빌라의 데레사의 『영혼의 성』에서 일곱 개 궁방들은 하나님과의 연합을 향한 마음의 갈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데레사는 여기서 우리의 기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역할에 주의를 기울인다. 왜냐하면 그녀의 경험상 “오직 우리가 기도 가운데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만 우리에게 설명된다: "주께서 우리 영혼 안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일들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아주 적다”(1궁방 2,7).

 

이 책은 데레사의 『영혼의 성』의 궁방들 가운데 분심들을 발견해 가면서 그것의 다양한 차원과 그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궁방들과 분심들에 관한 데레사의 통찰력 있는 언급들에 대한 해석학적인 이해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분심들의 목소리에 새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귀 기울일 수 있게 되고, 그것의 변혁적인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궁방 중심에 있는 방에 도달하기 까지 여러 궁방들을 지나면서 여러 가지 방해하는 것을 주의하라고 한다. 간 궁방마다 특징 적인 방해꺼리들은 우리로 하여금 쉽게 목적지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성안에 머무는 방식에 있어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1궁방 1,5) 아, 주여. 이 길에 있어서 무식한 탓으로 우리가 치르게 되는 고생을 살펴주소서. 무식한 탓으로 저지르는 불행은 우리가 당신만을 생각할 줄 알면 그만이다 하는 데서 오고, 또 아는 이들에게 물어보지도 않으며 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고생만 실컷 하게 되어 좋은 것도 나쁜 양 크나큰 잘못으로 간주합니다. 기도 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것은 이런 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더욱이 지식이 없는 그들 대부분은 마음속의 고민을 못 이겨내어 우울증에 걸리고, 건강을 잃고, 나아가서는 기도마저 아주 집어치우게 됩니다. 더 말할 것 없이 자기 안에 하나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보십시오. 삽시간에 전속력을 내어서 옮겨지는 천체의 움직임을 우리 힘으로 잡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의 상상을 멈추게 할 힘도 우리에겐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영혼의 모든 능력이 상상과 함께 옮겨지는 줄로 여겨서 하나님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잘못 쓰였다, 허사가 되었다 하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상상이 궁성 밖에서 갖은 맹수와 독충에 시달리면서 그 시달림으로 공로를 쌓아가는 동안, 영혼은 보다 높은 궁방에서 주님과 아기자기하게 지내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기에 함부로 마음을 어지럽히거나 기도를 놓아버리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악마가 노리는 바입니다. 대개의 경우, 우리의 불안과 고민은 모두 다 우리 자신을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4궁방 1,9).

 

시련과 방해거리들과 관련하여 자기-이해, 자기-지식의 필요성에 대한 데레사의 강조는 숙고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십자가의 요한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는 무지로 인해 고통 받는다”, 즉 자기-지식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우선적으로 요구됨을 말한다(『영적 찬가』 4.1).

 

“시련들은 영혼을 겸손과 자기-지식 가운데 보전한다”(『어둔 밤』 1.14.5).

 

이 불꽃이 영혼을 평화스럽거나 신선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탈진하게 하고 책망하는 것이 된다. 영혼을 거의 죽어가게 하며 자기만의 고유한 앎에 있어서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불꽃이 영혼에게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혼을 초라하게 만들고 자신을 깨닫게 해주는 영적인 빛 속에서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예레미야가 말하듯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빛은 영혼의 뼛속까지 꿰뚫으시면서 영혼을 가르친다[애 1:13]. 그리고 다윗이 말하듯이 영혼을 불로 달구어 시험하신다[시 17:3](『사랑의 산 불꽃』1.19). 각각의 궁방에 독특하게 나타나는 분심들과 그에 대한 적절한 반응은 우리가 본문에 초점을 두고 접근하도록 돕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데레사와 함께 우리는 그녀가 좋으신 예수님이라고 부른 분께 나아갈 수 있다. 그분 안에서 인간 안에 계신 하나님의 본질적인 현존이 나타난다. 우리는 궁방을 지나는 여정 가운데 그분과의 사귐을 갖기를 기대한다. 왜냐하면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시기 때문이다.

 

          목 차         

1. 서언: 무대 마련하기―인간-하나님 관계성의 신비

제1장: 제1궁방

제2장: 제2 궁방

제3장: 제3 궁방

제4장: 제4 궁방

제5장: 제5 궁방

제6장: 제6 궁방

제7장: 제7 궁방

결론: 개관과 요약